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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우주생존영화, 삶에 대한 고찰 : 그래비티

by 메모라 블로그 2024. 1. 4.

 

 

끝없는 우주에 혼자 남겨지게 되다 

어둡고 끝없는 우주에 혼자 남겨지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믿을 것이라곤 몸을 보호해 주는 우주복과 몇 프로 남지 않은 산소통이 다입니다. 이 산소통이 수명을 다하면, 아무도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사망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희망이 없는 삶의 끝자락에서 주인공들의 태도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던 라이언 스톤, 하버드 출신 항공 엔지니어 샤리프, 우주 왕복선 조종사 맷 코왈스키 세 사람은 우주에서 임무를 여느 때와 같이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러시아에서 자국의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폭발시켰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그렇게 중요한 사항은 아닌지라 가볍게 듣고 넘깁니다. 하지만 그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가 다른 인공위성과 충돌하게 되며 일이 커집니다. 부서진 파편들의 소나기로 인해 셔틀이 파괴되고 우주공간에 발을 묶이게 됩니다. 라이언스톤은 탈출하기 위해 고리를 풀었다가 공간에서 회전하며 멀리 튕겨나가게 되고, 흔들리는 시야 때문에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이렇게 큰 난리 끝에 유영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코왈스키는 라이언을 찾아내 서로를 줄로 연결시키고, 다시 왕복선으로 천천히 돌아갑니다. 이때 라이언의 산소연료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맷이 라이언과 나누는 대화는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착한 후 확인해 보니 엔지니어 샤리프는 이미 파편에 얼굴이 관통하여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우주왕복선 내부의 사람들은 이미 무방비한 우주공간 노출로 인해 동사한 상태입니다. 생존자는 두 명뿐인 상태가 확인되자, 그 둘은 우주 왕복선과 가까운 ISS로 이동하여 지구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우주복의 연료를 사용해서 ISS에 안착하려던 그때, 속도를 줄이지 못해 제대로 착륙하는 것을 실패하고 튕겨나가게 됩니다. 스톤의 다리가 낙하산 줄에 걸려 가까스로 정지했으나, 스톤과 묶인 코왈스키의 무게로 더 당겨지게 되자 아슬아슬하게 줄 하나로 둘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맷 코왈스키는 둘 다 죽을 것임을 감지하고, 과감하게 케이블 연결을 끊어냅니다. 사실상 목숨줄을 제 손으로 끊어버린 것입니다.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하게 된 맷은 무선으로도 계속 라이언에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이언은 부족했던 산소를 ISS안으로 들어가 겨우 정신을 되찾고,  다시 우주선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맷 코왈스키와의 무선을 시도하지만, 침묵만 되돌아옵니다. 이제 생존자는 한 명인 상태, 라이언 스톤은 소유즈를 타고 도킹을 시도하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복잡하게 엉켜버린 낙하산 탓에 팽팽하게 걸려버리게 됩니다. 스톤이 우주복을 입고 다시 나가 연결 고리를 아예 끊어버리려고 하는 찰나, 90분 간격으로 오는 우주파편쓰레기가 또 그녀를 덮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 내에서 아주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한 장면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라이언은 완전히 박살 나버린 ISS를 무시하고, 낙하산과의 연결부를 풀고서는 다시 소유즈를 분리시키며 큰 위험을 벗어납니다. 다만 큰 절망은 연료가 있는 줄 알았던 소유즈가 사실 연료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라이언은 완전히 망연자실하며 무선으로 되는대로 도움요청을 해보지만 연결된 곳은 지구의 어느 아마추어 통신사뿐입니다. 라이언은 삶의 희망이 모두 사라져 눈을 감은 채로 죽음을 기다립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한번 시청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간결한 대사와 장면, 그 속에 숨어있는 깊은 의미

모든 희망을 내려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라이언 스톤, 옆에서 맷 코왈스키가 말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맷은 여전히 모든 건 당신이 지금 뭘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그냥 가보라고 말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즐기고,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며 라이언에게 이 상황이 별거 아닌 듯 말해줍니다. 그 밖에도 우주선에서 나가떨어진 두 사람이 다시 우주선으로 되돌아가며 나누는 이야기, 산소가 부족했던 라이언 스톤이 ISS로 들어와 모든 우주복을 벗고 방금 태어난 신생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죽음을 앞둔 라이언 스톤과 무선에서 흘러나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의 대조감 등 깊이감 있는 장면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광활한 우주에서 혼자가 되는 느낌을 소름 돕게 잘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면 중에 1인칭 효과를 사용한 부분이 많은데, 꼭 보는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스토리 자체가 뻔하고, 갑자기 재난이 닥치는 여타 다른 영화들처럼 초반에는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간단한 대사와 어우러지는 깊이감 있는 장면, 3D로 생생하게 살려낸 시각적인 요소, 우주에 혼자 남겨지게 되는 그 공포감, 이것으로 이 영화가 인기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

이 영화는 2013년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등 각종 상을 휩쓴 우주 SF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직접 보시면 3D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술이 정말 뛰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영화보다는 철학 쪽으로 질문을 던지게 되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도 없고, 알아줄 사람도 없고, 그저 예정된 죽음만 기다린다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고민해 봤습니다. 좌절하며 울부짖는 라이언 스톤, 자신 스스로 목숨줄을 놓아버리면서도 유쾌한 농담을 하던 맷 코왈스키, 이 둘의 상반된 점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삶은 지금 내가 무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은 과거에 내가 선택한 결정의 총 집합체라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주제만 보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것이 다인 영화입니다. 다만 그 속에서 풀어낸 주인공의 감정선과 절망 속에서 끝없이 해결점을 찾아내는 모습, 지구에 도착해서 힘겨운 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주인공 등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것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위대하고 행복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되었습니다.